| 자작시나 좋은 시가 있는 곳. |
|---|
|
|
|
| 제목 | 웬지 타자를 치고 싶은 날이 있다 1998/12/20 (16:31) |
| 이름 | 손님 |
| 번호 | 84 |
| 조회 | 1168 |
| 본문 |
앞에선 종이를 잔뜩 걸어 놓은 프린터 소리 요란해도 오늘 같은 날에는 웬지 먼지 쌓인 타자기를 마음껏 두드리고 싶다. 두텁게 얹혀진 일감일랑 성능 좋은 PC에 떠넘기고 오늘만큼은 툭툭 튀는 타자기로 뽀얗게 먼지 않은 옛기억 탁탁 털어, 햇살 좋은 날 눅진 침구를 말리듯 낡은 타자기 누런 16절 갱지 위에 쪽 널었으면 좋겠다. 타닥 타닥 탁탁탁 글이 튄다. 고추잠자리를 쫓던 동심과, 등교길 곧잘 마주치던 소녀의 내리깐 두눈의 청순과, 수학정석 위에 포개진 풋내기 청춘의 불면과, 목마름으로 목마름으로 그립게 외치던 투쟁의 격정과 처음으로 첫사랑 그미의 살폿한 허리에 팔두르던 못내 두근거린 가슴의 떨림과, 회상의 종국 - 끝내 돌아앉을 프린터에 걸린 희망까지... 타닥 타닥 탁탁탁 덜컥거리는 타자기로 말끔히 털고 바싹 말려, 한밤 느닷없이 찾아온 한기로도 쉬이 식힐 수 없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온기를 가시지 않을 온기를 꿋꿋히 간직하고 싶은... 오늘 같은 날이면, 뽀송뽀송한 회상의 이불을 덮고 온밤을 그어야 하는 날이면 먼지 수북한 타자기를 마음껏 두드려야 한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