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밌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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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밤 11시에 학교서 비명 지르기 1998/09/15 (17:29) |
| 이름 | 김효원 |
| 번호 | 95 |
| 조회 | 1582 |
| 본문 |
제 목(Title): 밤 11시에 학교서 비명 지르기 내가 전공조교를 할때의 이야기이다. 수리물리학 과목 시험에 감독으로 들어갔는데, 이 과목은 워낙 산수가 긴 문제가 많아서 담당교수님이 시험시간을 무제한으로 제공한다고 하고 시험 을 치렀다. 저녁 6시에 시작한 시험이 밤 10시가 넘어서도 몇몇 사람이 답안지를 내지 않고 있는 상황. 떠그랄. 내가 시험볼때는 그리도 화살처럼 지나가던 시간이 감독을 하니까 왜 이리 지루한지... 이제는 강의실을 걸어 잠가야 한다는 수위 아저씨의 최후통첩을 받고 란다우는 애들에게 협박을 해야했다. " 니네들 내일 아침까지 시험 볼 거야?! 지나가던 강아지가 풀어도 벌써 다 풀었겠다. 빨랑 내! "<---강아지 운운은 수학과 민 호기 교수님에게 배웠음. 유난히 오래 버티던 몇놈이 쫑알쫑알 대면서 답안지를 내고 나가버렸고 이제 가장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모범생 타입 한 명만 내면 되는데 이 녀 석이 조교의 협박에는 굴하지 않고 계속 답안지를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하늘 같은(?) 조교를 발가락의 때만도 못하게 여기는 놈이라니! 여전히 답안지를 들여다 보고 있는 그 마지막 학생 앞으로 다가가서 란다우 는 가능한한 목소리를 권위있게 차악~~ 깔고 말했다. " 이봐, 학생. 아직 못 풀었으면 이제는 포기하고 그만 내지. 응? :) " 그런데..... 그 학생이 조금 이상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죽여 울고 있는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책상위에 펴놓은 그 학생의 답안지는.... 거의 백지나 다름 없는 상태로 몇글자 끄적여 놓은 상태였을 뿐이고. 보통 시간을 오래 끌면서 게기는 학생의 경우는 비록 틀린 답일 망정 온갖 헛소리를 답안지에 도배질하기 마련인데 (헛소리 같아도 하다보면 가끔 맞을 수도 있으니까.:p) 이 친구는 답안지가 텅텅 비어있는 것이다. 물론 시험을 볼때마다 몇글자 끄적이고 교수님 통촉하여 주옵소서 하는 배째라 스타일의 학생이 한두명 씩은 꼭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은 조교가 다 풀은사람은 이제 나가도 좋아요 하기가 무섭게 위풍당당히 (?) 걸어 나와서 답안지를 내고 나가는 게 보통이다. 이 학생 처럼 몇시간을 ㅂ잡고 앉아 이런 빈 답안지를 잡고 있다는 것은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 학생, 어디 아픈가? " 나의 질문에도 (가능한한 나의 어투에 배어 있는 공갈협박 투를 빼고서) 그 학생은 계속 몸을 떨고 있을 뿐, 말조차 더듬으면서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때 란다우는 지금 이 학생이 처해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 학생이 앉아 있던 자리가 바로 나 자신이 학부시절 수리물리 과목을 들으면서 비슷한 상항에 처했던 그 자리였기 때문이다. 어릴때는 그래도 나름대로 머리 좋다고 자부를 했었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솔직히 공부를 따라가기가 몹시 힘겨웠었다. 나보다 쌩쌩 날고 기는 녀석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죽어라고 공부해도 될까말까한 판에 낭만 적으로(?) 산답시고 쓸데없는 독서에 허구헌날 화류계 생활에 방탕하게 생 활했으니 공부는 점점 밀리고 중압감은 점점 심해지고 해서 수리물리를 들 을때 쯤에는 완전히 파산직전의 상태에 놓여 완전 무방비로 시험을 치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수리물리는 이 과목을 듣는 동안 물리학과 동기생중 20% 정도가 휴학한다는 공포의 통과의례. 중간고사의 내 답안지는 남보이기 부끄러울 정도였고 결국 채점되어 나온 점수는 내게 자살을 생각하게 만들만큼 처참한 것이었다. 고등학교때 무리 하다가 얻은 신경성 위궤양은, 내가 조금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까지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난 채점된 답안지를 받았었고 난생 처음으로 죽어버 리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가까운 화장실에 가서 그날 먹은 것들을 모두 게워내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짓(물리)을 해야 하는건지 생각했었다... 다행히 내게는 그런 나를 바로 잡아줄 좋은 선배님이 계셨고 비록 나쁜 성 적이었을망정 그럭저럭 그 학기를 마치고 다음부터는 어느정도 착실하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처음 시작한 전공을 계속하고 있는데..... 역사란 확실히 수레바퀴처럼 돌고도는 것인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학생도 나와 같은 자리에서 나랑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나는 일단 같이 감독을 보던 후배조교에게 먼저 다른 답안지를 가지고 올라가도록 하고 그 마지막 학생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 자네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애... 나도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내가 교수님께 말씀드려서 선처하도록 할테니까 답안지는 그냥 제출하고 나랑 이야기나 좀 하는게 어떨까? " 이런저런 말로 안심시켜 놓고 답안지를 받은 다음, 나는 시험장의 불을 끄 고 그 학생과 더불어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내가 받은 느낌은 이거 잘못하면 송장하나 치우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안에서 해마다 꼭 한두명씩은 자살자가 나온다던데 올해는 아직 소식(?)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험장인 대형강의동을 나오면서 보니 옆에는 물리학과 건물인 27동이 보였고 거기서 공부하다가 전년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나의 선배 Z형 생각도 갑자기 났다...... 시험장에서 부터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계속 나는 그 학생을 위로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대고 있었다. 나도 너의 지금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 너처럼 완전히 나락에 떨어진 듯한 상태도 체험해 봤고, 몸이 말을 안 듣는 것도 느껴봤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멀리 보면 그런거는 아무 것도 아니다. 네 앞에 있는 이 사람도 한때는 지금 너같은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어쩌구 저쩌구... 그 학생에게 내말이 얼마나 먹혀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한참 밖에서 이야 기를 나누던 우리는 그냥 서로 껴안게 되어버렸다. 내 전신을 타고 흐르는 그때까지 남아있던 그 아이의 몸떨림..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이 아이에게 정신을 차릴 것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좀 단순 무식 과격 한것이 나의 성품인지라 고차원적인 것은 생각 못하고 난 군대식 기합법을 생각해냈다. 그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면 몸안에 맺힌 것이 다 터져 나갈테 니 주변 눈치 보지말고 크게 소리를 질러 보라고 한 것이었다. :) 물론 쉬울리 없지. 잘못하면 한밤의 미친 놈 취급을 받기 십상이 아닌가. 숙달된 조.교. 란다우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학생회관 근처를 지나면서 부터 미친듯이 목청을 높여 " 야아~~~~~~~~~~~~~~~~~~~~~~~~~~ " 하고 소리를 빽빽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한번하고 그다음에 그 학생을 시키고.. 한번씩 번갈아 가면서. 원래 내 목소리가 큰편이어서 11시가 다 된 한밤의 캠퍼스에는 난데없는 외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처음에는 모기소리처럼 작게 소리내던 그 학생도 미친놈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조교의 명령에 따르더니 나중에는 정말 뱃속에서 울려나오는 큰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그리고... 소리가 커짐에 따라 내가잡고 있던 그 아이의 손에서 전해져 오던 떨림이 점점 약해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날 우연히 우리의 외침을 들었던 학교분들은 약간 기괴했을 것이다. 11시가 다된 어두운 교정에서 남자애들 둘이 뱃속에서 울려 나오는 비명을 질러대며 걸어가고 있는 광경은 결코 보기 좋은게 아니니까. :) 학생회관 근처에서 우리랑 마주쳤던 어느 여학생은 놀래서 멀찌감치 달아나 버렸다. 그 여학생에게 난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안 미쳤어요.:p 난 시험 뒷처리를 위해 다시 물리학과 건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문화관 근처에서 그 아이에게 내일 나를 찾아오라고.. 조교와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선배와 후배로서 찾아오라고 이야기한다음 헤어졌다. 내려가면서도 계속 비명을 외치라고 했기 때문에 서로 멀어져 가면서도 박자를 맞추어 맞고함을 치면서 그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아마 그날 그 시간에 하교하던 사람들은 왠 쌍동이 미치광이야 했으리라...*) 다음날 아침에 교수님이 날 호출하셨다. 같이 있던 후배조교가 이야기를 했나 보다. " 어제 좀 이상한 학생이 있었다면서? " " 네. 교수님 이거 잘못하다가는 송장하나 치우게 될 것 같습니다. " 그 학생은 많이 안정된 상태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우려했던 대로 공부 때문에 오는 과중한 부담감이 결국 아이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전주의 모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 대학에 입학했는데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점수는 나오지 않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심각한 불면증이 시작되었고.... 불면증이나 정신적 불안은 결국 성적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이런 악순환은 결국 휴학과 병원치료 까지 불러오게 된 것이었다. 친구들과도 점점 소외되고 졸업의 전망은 점점 나빠지고. 결국 그 수리물리 시험을 치르게 되었을때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던 거다. 그래서 중요한 수리물리 시험을 보는데 아는 것조차도 답지에 옮겨적지 못하는... 무제한 시험에서도 손을 떨고 있을수 밖에 없는 그런 처지였었다. 나는 일단 교수님께서 선처해 주시기로 했다는 말로 안심시켜 놓고 다시한번 크게 인생을 볼 것, 너무 물리학에만 집착하지 말 것 (그래도 대학원엘 오겠다고 우기는데 냅두었다가는 정말 사람 잡을 것 같았다) 등등을 훈계(?) 했다. 사람이 많이 안정이 되어서인지 어제와 달리 이야기 어느정도 잘 통했다. :)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고통스러워 하길래 미친 척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푹 자고 오라고 권유했다. 고향에서는 편안히 잠드는 사람이 꼭 관악산으로 다시 오면 신경이 날카 로와지고 잠을 못 이루어서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너무 완벽에 집착해서 모범생으로 살려고 하지 마라. 네가 1주일쯤 미친 척하고 학교 냅두고 고향에 가거나 다른 도시로 놀러간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너 인생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남자답게 좀 크게 놀아 봐! 빠샤! 그대로 전주가는 버스표를 사러 간다는 아이를 돌려 보내면서 당장은 괜찮 아 보이지만 또 다시 저 아이에게 안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몹시 불안 했었다. 교수님이 나의 건의를 받아 주셔서... 그리고 다행히 그 친구가 착실하게 숙제를 제출했기 때문에 F 가 뜨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반년쯤 후에 게시된 졸업자 명단에서 그 학생의 이름을 봤고 비록 대학원에 진학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제는 어디서건 유능한 사회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학교 안에서는 빌빌대다가 밖에 나가서 능력발휘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감?) 내게는 날 끌어준 선배가 있었고 나도 그 후배에게 그런 선배로서의 역할을 했기를 바란다. 무한경쟁이니 세계 일류 대학이니 해서 점점 대학사회에 경쟁만이 강조되고 교육은 실종되어 가는듯한 속에서..... 난 그래도 밤 11시에 비명을 질러댄 기억이 있는 이 학교가, 날 이끌어 준 선배가 있는 학교가, 세계에서 800위가 아니라 8000등이라고 해도 제일 좋다. 사람나고 대학 생겼지 대학나고 사람 생긴거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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